이소희 지원단장의 '발해13000호와 함께한 25일'작성 : 이소희 지원단장
'파도가 자꾸만 거칠어져 간다. 이대로라면 도고섬에 때릴것같다.' 도와달라, 도고섬 8마일 밖이다. (지원팀) 'Stand by' 'Stand by'.... 모든 조치를 취하였다. 안전 항해 바라며, 내일 아침 전화로 만납시다.
고인들의 뜻을 길이 길이 후세에 남길 마지막 증언자로 남으리라고 1300년 발해인의 역사와 흔적을 찾아서 네 사나이들은 작은 뗏목에 몸을 싣고 '발해항로 학술 대 탐사'를 시작하였다. 북쪽 공해상을 지나 울릉도와 독도를 바라보며 동해 중부 해상인 후포앞 바다에서 발해 1300호와 18일 새벽 나는, 해경 경비정을 타고서 그들에게 지원물품을 전달하고자 선상에서 짧은 만남이 있었고, 독도를 눈앞에 두고 하염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폭풍우를 동반한 기상 악천후로 자꾸만 자꾸만 일본쪽으로 밀려 들어갈 수 밖에 없었으니... 누군들 알았을까? 그들이 만난 사람중에 내가 마지막 사람이면서, 또한 그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줄이라고..... 선상에서의 짧은 만남은 내 가슴 저 깊은 곳에 애절한 사랑으로 발해 1300호를 묻는다. 그리고 고인들의 숭고한 뜻을 길이길이 후세에 남길 마지막 증언자로 남으리라고,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려했던 뜨거운 젊음이의 기상과 그들의 투철한 애국심을 내 힘이 다할때까지 후세에 전하리라.....
● 97년 12월 31일 오후 2시
쓸쓸한 지원팀의 탄생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내게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뗏목의 출항과 장대장이 육상 지원을 요청하였다는 소식을 내게 전하였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까? 바다는 늘 내게 두려운 대상지였고 더군다나 뗏목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일방적인 지원요청이라니. 나로선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생면부지 그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일방적인 통보로 시작되었고, 이 상황을 누구에겐가 알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속에 98년 1월 1∼2일은 한국해양대학교 무선국 분들을 수소문하느라 전화통을 붙들고 통사정을 해야만 했다.
연휴로 인해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 전체가 휴무였고, 답답한 나의 심정은 울분으로 변하면서 한줄기 실오라기를 잡을 수 있었던게 1월 2일 늦은 시간이었다. 한국해양대학교 아마추어 무선국 국장인 이재희군은 영문도 모르고 내게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학료로 귀교하였고, 이렇게 부족하기 그지없는 '발해항로 학술 대탐사대'의 대장정을 도울 수 있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지원팀이 쓸쓸하게 탄생했으니.....
● 98년 1월 3일
뗏목에선 통 무소식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쯤에 있을까? 나의 속타는 심정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나름대로 탐사대에 관심을 갖고 소식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거웠던 나의 심적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가 있었다. 드디어 한줄기 햇살처럼 그들 소식이 PC통신상에, HAM인이 교신에 성공하였다는 내용이 게재되면서 우리들은 흥분에 들떠 환호을 하였다.
● 1월 4일
며칠을 보냈을까? 곡기를 입에 댈 수 없으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엉망으로 변해버린 내 몰골.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들과는 교신이 안되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1월 5일 새벽녘에 pc통신상으로 접하였다. 내용인즉, 위급한 소리로 탐사대 호출부호와 임현규대원의 닉네임을 들은 홍콩인이 우리측에 해독을 요청하였고, 우리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 1월 5일
뗏목 실종오보 덕에 쏟아지는 각계 각층의 격려
(정오) 별 별 불길한 생각과 몽상으로 홀딱 밤을 새워야 했다.
(12시 교신) 그들은 밤새 안녕이라는 듯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나타났고, 현재 북한측 공해상인 청진과 성진 중간쯤에 있다 하였다. 이제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과 매일 3회 정오 12시 16시 20시 이렇게 3회 교신 스케쥴을 잡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꼭" 탐사를 성공하겠다며 포부 당당한 의지와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같은 날 각 방송 마감 뉴스에 러시아 타스 통신을 인용한 발해 뗏목 탐사대 실종을 보도하였고, 지원팀은 즉시 정정보도를 요청하였으니.... (오보상황은 러시아 해난구조당국에서 출항이후 탐사대의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한 관계로 실종이라 보도하였다.)
● 1월 6일
새벽부터 정신을 차릴수가 없을지경이다(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전화들....). 오보로 인하여 발해탐사대는 자연스럽게 전 국민과 각계 각층의 기관으로부터 격려와 관심을 모을수가 있었다.
● 1월 7일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밤사이 거센 풍랑으로 방향타를 분실하였고, 이용호대원의 경상소식을 접하였다. 걱정이다. 얼마만큼의 부상이며 또한 방향타 없이 어떻게 방향을 잡을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그들의 상태가 너무도 걱정스럽고 또한 북한측 공해상에 떠있는 그들의 안전도는 어느 정도일까? 만약에 바람이 그들을 북측으로 몰아 부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되나 등등등.....
● 1월 8일
어제밤 해상 날씨는 다시 거칠어졌는데..... 나에게 있어서 전화벨 소리는 공포였고, 기다림이였다. 언제나처럼 의기당당하고 호탕하게 들리는 임현규 대원 목소리는 내 감성을 충분이 감복시킨다. 그들은 밤사이 엄청난 태풍으로 고생은 하였지만 모두 안전하다 했다. 눈물이 왈칵 솟아오른다. 식량상태 및 지원 품목 리스트, 가능하면 울릉도를 경유하고 싶다는 그들과 대화를 마친뒤, 나와 이재희군은 부랴부랴 장비 및 지원품을 준비하러 부산과 서울에서 각기 포항으로 향하였다.
● 1월 9일 ∼ 11일
폭풍주의보, 폭풍경보......
모든 물품 구입과 준비가 완료되었다. 탐사대가 우리 영해로 접어들면 뗏목과의 선박 충돌을 우려 하여 해상 안전 전령을 요청하였고, 편의상 뗏목선명을 "발해 1300호"라 칭하기로 하였다. 해경 및 해군 등 관계기관의 협조가 상상외로 잘 이루어졌다. 다시 폭풍주의보, 폭풍경보로 지원팀이 울릉도로 들어가질 못하고 포항에서 안타까운 발구름만 할수 밖에 없었으니......
● 1월 12일 ∼ 13일
파도야 그들이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한 잠을 청해다오
대형 고무보트, 밧데리 등 그들에게 전해줄 지원품과 포항 해경에서 지원받은 해류도 및 기타 자료등을 챙겨들고 지원팀은 울릉도로 향하였다. 우리를 환영으로 맞아주는 주민들의 따뜻한 온정은 그동안의 피로와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울릉도 저동 아마츄어 햄동호인이 운영하시는 물레방아 경양식집에 숙소를 정한 뒤 그분의 모든 장비(무선국)를 지원 받을수 있었다. 그 사이 해경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배와 헬기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협의하였고, 협조 하겠다는 흔쾌한 답변을 받아냈다.
'자!. 이젠 준비 완료다. 제발 날씨만 조용해다오..... 파도야 그들이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한 잠을 청해다오....
● 1월 14일
HLO JQT '발해 1300호' 들리면 응답바람......
밤새도록 응석을 부리던 바다가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심술을 피우기 시작한다. 오늘쯤은 '발해1300호'를 만나고 싶다. 상황이 바뀔때마다 우리들의 만남도 잦아졌다. 2시간 한번씩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교신을 하였다. 땅에 발을 딛고 바라보는 바다는 환상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밤새도록 바다는 광란을 하였고 뗏목을 부분 파손시켜 우리들의 가슴에 멍을 던지고 있다. 14시쯤 뿌옇게 내리는 안개비로 시계는 흐려만가고, 동해의 커다란 너울은 섬을 삼킬 듯 달려든다. 목이 터지도록 그들을 불러보지만 무응답......
사동 해군기지 레이다에 최초로 뗏목이 잡혔다는 소식과 예의 주시했지만 약 5분후에 사라져 버렸단다. 무언지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조여온다. HLO JQT '발해1300호' 들리면 응답바람....
온 밤을 하얗게 세우며 나는 바다가 밉고 원망스럽다. 얼마나 울었을까? 이덕영 선장 부인은 퉁퉁부운 얼굴로 망연자실 말을 잇지 못한채 새벽 댓바람에 우리를 찾아오셨다. 애꿎은 장비를 패댁이쳐본들 무슨 소용이랴? 악! 악! 거리며 HLO JQT '발해1300호' 제발 제발.....
● 1월 15일
울산앞바다에서 대형선박이 뒤집혔다
간밤 상황으로 울산 앞바다에서 대형선박 사고가 생겼다. TV에 비춰진 처참하게 뒤집힌 선박과 구명선은 우리들을 실신시켰고 하늘도 원망스럽다. 바다는 정말 싫다. 오전 8시 '발해1300호'는 나를 조롱하듯이 힘차고 우렁찬 목소리로 나와 주었고 장철수대장이 국민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국민들의 생활에 작은힘이 되길 바라며, 격려해주신 HAM동우회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뗏목을 벗삼아 아침식사를 할 예정이라며 밤사이 엄청난 바람을 받아 이미 울릉도를 지나쳐버렸다 하니, 이젠 지원팀이 섬에 갇힌 꼴이 되었으니..... 하하하...
● 1월 16일 ∼ 17일
얼마나 감격적이면 자기 성을 다 바꿀까?
'발해1300'호는 해류와 조류 그리고 바람을 이용한 순수 무동력 뗏목이다. 최신예 통신 장비와 그들의 상태는 양호하여 이젠 더이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지원팀은 날씨가 조용하길 기다리며 제 지원을 하고자 장비를 점검한 뒤 다시 포항행이다. 17일. 극구 말리는데도 따라 나서는 이덕영 선장 부인과 함께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앞당겨 출항하는 울릉도→포항행 썬플라호에 승선하였다. 과로한 탓일까? 지금까지 숱한 여행중에도 멀미는 사절이었는데 심한 멀미로 나의 의식은 내 사고를 벗어날 즈음 꿈결처럼 "이소희, 이소희씨는 선장실로 빨리 올라 오십시오". 생각할 겨를이 없다. 흔들리는 선체와 함께 내 몸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뛰어 오르는 계단이 왜이리 많고도 길꼬..... 선장이 건네주는 마이크를 받아 쥔 내손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떨린다. 처음으로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수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소희입니다." '발해1300호'. 거기 계시면 응답바랍니다." "아 ∼ 여기는 "발해1300호". 저는 최∼'최' 현규입니다." 얼마나 벅찼을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수 한번 없었던 통신대원 임현규가 자기 성을 다 바꾸다니.... "다시한번 말씀해주십시요?. '발해1300호' 누구시라고요?" "아하!. 하하하... 죄송합니다. 저는 '발해1300호' 임현규입니다. 지금 저희들에게 단장님이 타신 배가 보이고 있습니다. 급히 안테나를 연결하여 통화가 이루어졌군요. 잠시후면 아마도 사라질겁니다." "네. '발해1300호' 저는 지금 포항으로 가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여러분을 만나러 "꼭" 갈 것입니다. 부디 안전 항해하시고 기다려주십시요. "꼭" 약속드립니다." "아∼ 네! 기다리겠습니다. 이소희 단장님을 뵐수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그∼럼 몇시쯤이 될까요?" "늦어도 오늘 저녁 8시안에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경 경비함정에 승선 이 얼마나 우스운 대답이였나. 바다나 바다 거리개념이 전혀 없는 나로선 내 생각처럼 예정된 시간대로 배가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 레이다에 잡힌 뗏목은 먼지처럼 부서져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그들도 우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벅차 있었다. 사후 장대장의 일기를 살펴보면 내가 생각없이 던졌던 8시를 너무도 애타게 기다렸고 그날 밤 10시 15분에 좌절과 고통으로 이러한 글귀를 남겼다.
('지원함대가 오기로 했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신은 나에 편이 아닌가보다.') 포항엔 도착 하였으나, 내 생각과 달리 상황은 엉뚱하게 변하여 있었다. 울산 앞바다 선박좌초 사고로 우리가 타고 나갈 수 있는 배는 한척도 없었고 모든 함정이나 헬기 및 비상장구 그리고 인원 등이 그쪽으로 투입되어 있었으니.....
울며 보채고 떼쓰는 나를 달래느랴 땀을 흘리던 포항 해경 상황실장님께서 나에게 한줄기 햇빛을 주시듯 던진 한마디, 〔저녁 9시쯤이면 경비함정 들어오니 함장과 상의해보라고.... 〕 9시쯤 경비정은 들어왔으나 함장의 첫 마디는 NO였다. 이유는 바다가 다시 거칠어지고 폭풍경보로 바뀌는 상황이라 소함정은 띄울 수가 없다니.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함장께 매달리자 민간인은 승선안되니 지원품을 주면 전달해 보도록 노력하시겠단다. '이럴수가, 절대로 그럴 순 없다.' 이제는 연기자가 된듯이 조금은 거짓도 보태어 '꼭' 그들을 만나야 된다고 조른 결과 이재희와 나는 승선허락을 받았다.
몇시간을 나갔을까? 컴컴한 바다 밤하늘은 내겐 노랗게만 보이고 순간순간 정신을 잃으며 그렇게 새벽을 맞이했다.
● 1월 18일 새벽
거센 풍랑이 밤하늘 별조차 삼켜버린 칠흙처럼 어두운 동해바다. 성난 이를 들어내고 삼킬듯이 내게로 달려온다. 진눈깨비를 동반한 뿌연 안개비는 어둠의 공간을 무겊게 덮어내리고, 성난 파도 한자락을 붙든채 간절히 애원한다. 조금만, 조금만 진정 해 달라고!.... 나의 기원을 들은듯만듯 외면하는 바다. 더욱 더 기승을 부리며 거친 파도와 역류하는 해일은 커다란 너울로 나를 포위한다. 내 작은 육신안에 모든 기능들이 밖으로의 탈출을 기도한다. 소스라쳐 놀란듯 요동치는 작은 배..... 내 의식의 한계가 궤도를 벗어나 이탈할 것 같다.
아! 눈비시어라. 발해1300호
어두운 벽을 제치며, 희망으로 다가서는 빠알간 불빛하나.... 거치른 바다 성난 파도를 비웃듯이 팔랑대며 낙엽처럼 다가서는 발해 1300호. 아! 눈이 부셔 쓰러질 것 같다. 흰 돛을 화알짝 펼쳐들고 나는듯 파도를 넘어서고 있는 뗏목 발해 1300호. 얼마만인가!... 너무도 애타게 서로의 만남을 원했던게!!..... 바다는 너울 위로 뗏목을 품고 커다란 입을 벌려 한입에 꼴까닥 삼킬량 덤벼든다. 작고도 힘없어 보이는 뗏목은 아량곳 하지 않고 제 흥에 겨워 나풀나풀 춤을 춘다.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가까이서 그들을 불러본다.
거센 풍랑탓인가?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줄 모르는 발해 1300호와 승선 대원들. 목청 높혀 소리쳐 불러본다. 장철수, 이덕영, 이용호, 임현규. 주체할 수 없는 육신을 추스르며 악! 악! 거려본다. 대답없는 발해 1300호여.....
민족의 웅대한 기상과 함께 13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발해 1300호여 어서 깨어나라...... 미안했을까? 나의 힘겨운 모습이 안스러웠나! 작은 선실창이 빼꼼히 열리며 덜 깬 잠을 온몸에 가득안고 렌턴을 비추는 사람 하나. 목젖을 타고 뜨거운 피가 솟는 것 같다. 벅차 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 눈물이 두볼을 타고 정신없이 흘러 내린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 대장 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파도가 높아서 잘못하면 배와 뗏목이 부딪칠것 같습니다. 빨리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주시고, 물품을 받으셔야죠?"
선실 문을 열고 나오는 이덕영, 이용호, 임현규 각기에 역활을 맡고 분주히 움직이는 초췌한 모습들....
"이 선생님 고생 많으셨죠? 건강은 어떠세요?" "예, 괘안심더, 고생 많았심더, 고맙심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나와 눈을 마주치질 못한다. 벌겋게 상기된 두 볼.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불빛사이로 수줍게 나타나는 임현규 대원. "이 단장님 목소리보단 모습이 훨씬 샤프합니다. 우리 육지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거하게 회포를 풉시다." 호쾌한 웃음소리...... 약 4∼5분동안 긴박하고도 신속하게 정말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짧게 우리의 만남은 아쉬움을 남긴채 애꿋은 손만 하염없이 흔들어 본다. 이럴것을!... 그렇게 애태우며 마음 졸였던가?....
대한민국 국보급같은 네분의 사나이들 발해인들의 영혼처럼 1300년을 살고도 남은 듯이 내 몸은 피로에 젖어 목청은 갈기갈기 찢어져 말을 잇지 못하고...... 아쉬움을 태백이 칠한채 그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떠날것을 그들은 알았을까?. 동해바다 저 넓은 너울을 젊은 투혼과 의지 하나만으로 작은 뗏목에 몸은 실은 대한민국 국보급같은 네분의 사나이들... 거센 풍랑 적막한 고독과 싸우며 바람을 벗 삼아 해류를 님삼아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기약없는 여행을 떠나버렸다.
그들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우리 모두를 잊은양 남은 이들 가슴에 아픔만 남겨두고..... 파손된 뗏목의 잔해와 몇가지의 유품, 그리고 우리네 가슴에 영원한 사랑의 여운을 남긴채...... '우리는 오늘밤 영화의 한장면처럼 만났다 헤어졌습니다' 라는 임 현규대원에 마지막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내 귓전을 때리는데......
98년은 발해건국 13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우리들의 의식속에서 잊혀갔던 발해역사를 일깨워주고 발해인들이 해상항로를 통한 계절풍을 이용하여 한반도 남부지방과 일본등을 왕래했음을 증명하고 해양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장철수(대장), 이덕영(선장), 이용호(촬영), 임현규(통신)대원은 러시아에서 약 2개월동안 뗏목제작과 항해 사전 준비를 하였다. 발해항로 학술 대탐사 뗏목탐사대는 '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을 출발하여 공해상으로 이동 중 동력이 없던 뗏목이 바람에 밀려 자칫 북한영해를 침범할 뻔한 적도 있었고, 뜻하지 않던 폭풍속에 휘말려 악전고투 대원들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1월 14일쯤에는 식량과 파손된 뗏목의 수리 장비등을 지원받기 위하여 울릉도에 접안하기로 했지만, 그때 역시 휘몰아치는 폭풍과 해일때문에 울릉도를 비껴가야만 했다. 지원품을 전하지 못한 나의 마음과 전달받지 못한 탐사대의 안타까운 심정을 과연 그 누가 알수 있을까?.
육지를 150m 눈앞에 두고 뗏목은 전복되고 그렇게 우리는 어렵게 어렵게 18일 후포 앞바다에서 만날 수 있었고, 지원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항에 들어올것을 희망하였던 발해 1300호는 25일동안 거센 해류와 풍랑에 맞서 싸우며 '우리에게 포기란 없다'며 늘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밀리어 일본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탐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또다시 몰아치는 폭풍우를 피하고자 일본 동해상 오끼군도 도고섬에 접안 시도중에 육지를 150m 눈앞에 두고 거센 파도에 뗏목은 전복되었다. 꿈엔들 생각했을까? 승선대원 모두는 불시에 닥친 해난 사고로 참사를 당하였다.
세인들은 그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모하였다 실패하였다 하지만......
장철수 대장은 평소때도 해양발전을 위하여 21세기 바다연구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독도사랑을 외쳐왔었고, 이덕영 선장 역시 장대장과 같은 일을 하면서 울릉도 자생식물을 전국토에 보급시키고자 푸른국토가꾸기 운동본부를 운영하셨다.
또한 이용호대원은 예술에 혼을 불태웠던 사진작가로 미술과 사진등에 젊음을 바쳤고, 피끓는 젊은 혈기를 감추지 못했던 임현규 대원은 세계 오지등을 단독여행하면서, 또한 해양학을 공부하는 해양대학생이었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도 뚜렷하여 목적한 바를 꼭 이루며 살아가셨던 그들은 평소에도 국가 발전과 나라 걱정 그리고 독도지키기를 위한 여러가지 행적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인들은 그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무모하였다 실패하였다는 말들을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고자 했던 목적과 얻고자 했던 학술 탐사를 무사히 마친 후 마지막 귀가에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갔을 뿐이다.
이 지면을 통하여 그동안 발해 1300호를 격려해주시고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싶다. 특히 러시아 극동대학교 관계자 여러분들은 발해 1300호를 위하여 거금 1만 5천 달러이상을 지원해주셨고, 장대장 장례식에는 부총장님과 한국학장님께서 직접 방문하여 주셨다.